지난 2015년 7월에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이 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최순실 특검에서는 삼성물산의 단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합병결의에 찬성하게 된 배경에 대하여 조사하고 있다. 합병비율과 합병 시기, 합병 목적 등에서 문제는 없었는지, 삼성물산의 이사들은 충실의무를 제대로 이행한 것인지, 이로 인한 주주들의 손해는 없었는지 법적으로 다시 한 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2015년 7월 17일 삼성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서는 각각 주주총회를 열고 두 회사의 합병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제일모직의 경우는 삼성 내부 지분율이 높아서 주주총회 결의 통과에 아무 지장이 없었지만 삼성물산의 경우는 달랐다. 외국인 주주와 기관투자자들의 동의 없이는 주주총회에서 필요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더구나 삼성물산의 외국계 대주주 중 하나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라는 헤지펀드는 공개적으로 합병에 반대하였다.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넘겨주기 위하여 삼성물산의 소수주주들을 희생시키는 불공정한 합병이라는 주장이었다. 엘리엇은 가처분 소송 등 법적인 조치까지 취하였다.삼성 측에서 합병을 원한 이유는 누가 보아도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경영권의 승계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가 발행한 전환사채를 인수한 후 이를 주식으로 전환하여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자회사인 삼성생명까지도 지배하게 되었다. 그 후 삼성에버랜드는 상장회사인 제일모직과 합병함으로써 상장회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함으로써 이재용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되고, 그럼으로써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이 대주주인 삼성전자까지도 확실하게 지배할 수 있게 된 순간 엘리엇이 딴지를 걸고 나온 것이다.
삼성 측에서는 다급해졌다. 삼성물산의 임직원들이 개인투자자들을 찾아다니며 합병에 찬성해 줄 것을 부탁하고 다니고, 여러 미디어 매체에 합병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는 광고를 실었다. 그리고 검찰 수사를 통하여 밝혀진 바와 같이 이재용 부회장은 합병 주총을 앞두고 삼성물산의 단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합병에 찬성해 달라는 모종의 부탁과 뒷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그 후 실제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주주총회에서 합병에 찬성하였다. 반면에 국민연금의 이러한 합병 찬성으로 국민연금은 막대한 평가손실을 입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합병 찬성으로 국민연금에 막대한 평가손실 발생

합병 당시 적용된 합병비율은 1대 0.35였다. 즉 1주당 주식가치의 비율을 제일모직 1, 삼성물산 0.35로 본 것이다. 세계 최대의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가 산정한 적정 합병비율인 1 대 1.21을 적용하는 경우 국민연금의 손해는 약 6,157억 원에 이르게 된다.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홍순탁 공인회계사의 발표에 따르면, 국민연금 내부에서 전망한 적정 합병비율 1대 0.46을 기준으로 할 경우 손실 추정액은 1,233억 원, 합병비율을 1대1로 할 경우 손실액은 5,17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법적으로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합병비율의 불공정성 논란

우선 합병비율에 대하여 한 번 살펴보자. 엘리엇이 제기한 가처분 소송에서 법원은 합병비율 1대 0.35가 적법하다고 하였다. 즉 자본 시장법에서 정한 합병비율의 계산방식에 부합하므로 적법하다는 것이다. 합병을 추진하는 회사의 임원 입장에서는 법률상 합병비율이 문제가 없더라도 그것이 자기 회사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상장회사의 주가는 계속 변동하는 것이므로 굳이 주식의 가치가 저평가되었을 때를 택하여 합병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이는 고스란히 주주들의 피해로 귀결된다. 실제로 삼성물산의 합병 당시 주가는 삼성물산의 장부상 자산 가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한편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합병비율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합병을 추진하는 양 당사자 회사의 임원들이 교섭을 통하여 자기 회사 주주들에게 가장 유리한 합병비율을 협상하도록 하고 있고, 이렇게 하지 않을 경우 임원들의 충실의무 위반이 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배임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상장회사의 경우 자본 시장법으로 합병비율을 산정하는 방식을 못 박아 놓았다. 협상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 놓은 입법취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소수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런 규제가 없을 경우 대주주가 자기 입맛대로 합병 비율을 정함으로써 소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이러한 합병비율 법정 제도는 오히려 대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소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 회사의 경영진은 필요에 따라 호재성 혹은 악재성 공시를 하거나 혹은 경영실적을 의도적으로 변동시킴으로써 어느 정도 합법적으로 주가를 움직일 수 있다. 만약 경영진이 대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이와 같이 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해서 형성된 부적정한 주가를 바탕으로 합병을 추진한다면 이는 적법하기는 하지만 적정하지는 않은 즉 부당한 처사이다. 임원의 충실의무 위반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배임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불공정한 합병을 추진한 이사들에게도 배임 문제 발생
이사는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확립된 판례이다.대주주 등 특정인의 이익을 위하여만 경영을 할 경우에는 배임이 된다. 결과적으로 삼성물산의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가장 이익이 되었다. 그런데 합병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총수이기는 했지만 삼성물산의 주주가 아니었다. 삼성물산의 주주는 대주주인 국민연금, 엘리엇 등을 비롯한 다수의 소액주주들이었다. 삼성물산의 경우 순자산가치에도 미달하는 주식시장에서의 시가 총액을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정하였는데, 이러한 결정으로 인하여 삼성물산의 주주들은 명백히 손해를 보았다. 합병비율 자체는 법을 위반한 것이 없지만, 실질적으로 부당한 비율의 합병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본건 합병은 결과적으로 삼성물산의 지배주주를 국민연금이나 엘리엇 같은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이재용 부회장으로 바꾸는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지배권의 변동(Change of Control) 상황에서는 특히 이사의 충실의무가 더욱 문제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판례이다.

 

지배권 변동 상황에서는 공정성이 특히 중요

엘리엇은 가처분 소송에서 합병비율의 부당함을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행 재판실무는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합병의 무효를 주장하는 주주 측에서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건과 같이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회사 측에서 합병비율의 공정성을 입증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 판례의 원칙이다. 미국 와인버거(Weinberger) 판결에서 채택한 ‘전적인 공정성(Entire Fairness)’ 기준은 이러한 원칙을 밝히고 있다. 

즉 이해관계 상충 상황에서는 회사 측에서 합병절차 및 합병비율이 절차적으로나 실체적으로나 전적으로 공정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권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에 대한 국내외적 평판(Reputation)의 하락은 면할 길이 없다. 참고로 현재 삼성물산 합병무효 소송이 진행되고 있지만 가처분 사건 재판에서 이미 보았듯이 합병이 무효로 판단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 사법부가 채택하고 있는 입증책임 원칙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주들의 손해는 회복할 길이 요원하다.

 

신흥철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변호사 hc.shin@lawplex.co.kr
사법연수원 18기로 수료(1989)한 그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삼성그룹(구조조정본부, 삼성전자, 삼성생명) 사내변호사, 미국 폴 헤이스팅스 법무법인, 법무법인 광장 및 법무법인(유) 화우의 파트너 변호사를 지냈다. 회사법, M&A, 금융, 증권, 보험, 사모펀드, 영업비밀, 지적재산권, 벤처 등의 전문분야를 다루고 있다.